이영훈 - 가로수 그늘 아래로 사라져 버리다..........붉은비가 2012. 2. 5.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며 세수를 한다.
이젠 아무도 열광하지 않고 아무도 부르지 않을 오래된 이문세 노래 하나를 조용히 흥얼거린다.
'이문세 노래들.... 이영훈 작곡. 5집까진 참 좋았었는데....'
그냥 문득 그런 아무렇지도 않은 생각들이 지나갔다.
아무렇지도 않게 세수를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수건으로 얼굴을 닦던 그때,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생각들이 났다.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은 아침이었다.
출근해서, 점심 다가오기 전이었나? 인터넷으로 뉴스를 흝다가 뜻밖의 헤드라인 하나가
눈을 팍 때렸다.
"작곡가 이영훈, 대장암 투병중 사망"
....
그 순간의 기분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뭔가 텍스트가 아닌 한 차원 다른 표현 방법이 있다면 그것을 쓰고 싶었다.
유명 가수도 아닌 작곡가 한 사람을,
그것도 살아가면서 10년에 한 번이나 떠올릴까 말까한 그 작곡가의 이름을
우연히 아침에 세수하다가 떠올렸고 곧 잊고 있었는데 점심 때 뉴스를 보며
그 사람의 부고를 듣던 순간의 이상함, 당혹스러움,
쇼핑몰의 똑같은 100개의 안경에서 눈 딱 감고 집어 올린 안경의 렌즈가 공교롭게
깨져 있는 듯한....
그 이상한 우연의 충격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80년대, 우리는 이문세의 노래에 열광했다.
그러나 남학생들은 인기 청춘 스타에 대한 애정표현을 무척 심드렁해 했고
여자 연예인 스타에 대한 애정 표현은 더더욱 친구들 앞에서 함부로 하지 않았다.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선택권도 없는데 사내로 키워진 우리에게 그런건 유치해보였다.
우리는 다들 취향이 달랐고 특정한 누군가의 연예인을 좋아하노라고 막 떠들고 다녀서
다른 녀석들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문세의 노래는 달랐다.
우리는 '이문세의 노래'에 열광했다.
평범한 얼굴의 남자 가수 이문세 자체에 대해선 아무런 애정이 없었고 그가 어디서 뭘하건
우린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그가 부르는 노래, 발표하는 앨범, 저음으로 윤택하게 흐르던 근사한 그의 목소리로
불러댔던 노래와 가사에는 정신을 잃었다.
단언컨데, 그것도 시커먼 남고등학교에서 반 아이들 중 아무도 이문세 노래를 안좋아 하는 아이는 없었다.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하는 상념들과 아직 아무것도 완성되지 않은 이데올로기들과
저마다 도시락 반찬이 다른 만큼이나 각자의 별에서 떨어져 나온 우리들에게 이문세는
같은 분모의 분수였고 교집합이었으며 똑같은 몫으로 나누어 받은 소수였다.
우리는 정말이지 진정으로 이문세 노래들로 첫사랑했다.
우린 열여섯 열일곱이었으니까.
우리는 멋모르고 닥쳐온 사춘기를 무방비 상태로 관통하고 있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은 어떻게 하고 옷은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타인의 시선에 눈동자를 어디다 둬야 하는지도 몰랐고 가끔 서점에 가면 어떤 책이
우리가 읽어야 되는 책인지도 몰랐으며 80년대 영화들에 대한 선별 기준도 없었다.
한 마디로 키만 껀정하게 커가지고 시내 한복판에 등을 떠밀려 내몰린 느낌이었다.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으면서 그냥 시장에 내놓아진 느낌이었다.
서늘한 봄밤, 벚꽃 이파리 환한 길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슬픈 기분 때문에 우울하게 골목길을 걸어 가던 여드름 투성이들이었을 때, 그때 이문세가 3집과 4집을 내 놓았다.
사춘기의 우리는 그때 구원의 빛을 만났다.
내 곁에만 머물러요 떠나면 안돼요
그리움 두고 머나먼 길 그대 무지개를 찾아올 순 없어요
(소녀)
그 사람 나를 보아도 나는 그사람을 몰라요
두근 거리는 마음 아파도 이젠 그대를 몰라요
(사랑이 지나가면)
그대 떠난 여기 노을진 산마루턱엔
아직도 그대 향기가 남아서 이렇게 서있소
나를 두고 가면 얼마나 멀리 가려고
그렇게 가고 싶어서 나를 졸랐나
(휘파람)
그리고 그 유명한 노래.
처음엔 이렇게 클래식한 곡이 가요가 될 수도 있구나라고 충격을 받았던 노래.
동네마다, 길마다 하나씩 있던 레코드점에서 외부 스피커로 어느 곳 하나 질 수 없다는 듯
합작해서 날마다 시간마다 똑같이 틀어 놓던 그 노래.
그녀의 웃음소리뿐.
하늘은 맑아 있고 햇살은 따스한데
담배 연기는 한숨되어....
하루를 너의 생각 하면서 걷다가 바라본 하늘엔
흰구름 말이 없이 흐르고 푸르름 변함이 없건만
이대로 떠나야만 하는가 너는 무슨 말을 했던가
어떤 의미도 어떤 미소도 세월이 흩어 가는걸
이대로 떠나야만 하는가 너는 무슨 말을 했던가
어떤 의미도 어떤 미소도 세월이 흩어 가는걸....
후렴부분-수많은 남자들이 불러대는 중저음의 합창.
과장하건데 그건 자못 비장하고 장업하기까지 했다.
가요라는 매체속에서 갑자기 튀어 나오는 비장하고 장엄한 느낌의 합창을 들어보는 경험을
처음 하면서 우리는 뒷머리 쭈뼛 서는 소름조차 느꼈다.
그때, 학교가 끝나고 시내 길을 관통하여 오는 레코드 가게에서 이 노래가 들렸고
조금 더 걸어오다 보면 지나치는 동네 레코드 가게에선 후렴이 스피커를 울리고 있었다.
그땐 그랬다.
우리는 차츰 이문세도 이문세지만 3집과 4집 테이프 겉면에서 모든 노래 제목 옆에 빼놓지 않고 적혀 있는 이름 하나를 발견했다.
'이영훈'이었다.
작사 작곡 이영훈.
어린 마음이었지만, 앨범 하나에 들어간 모든 곡을 어떻게 이처럼 버릴 것 없이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것인지, 아하 그렇구나 노래란 게 가수가 부르는 것이고 작사가 작곡가는 따로 있는 것이지 참 그렇구나 하며 우린 이영훈씨 덕분에 작곡가에 대한 존재를 처음으로 인식했고 작곡가 한 사람이 이렇게 '굉장할' 수도 있구나 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전에 우리에게 작곡가란 없었다. 가수와 노래가 있었다.
그러나 그때 우린 처음으로 작곡가라는 존재를 인식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문세의 노래만큼이나 작곡가 이영훈이란 사람이 과연 누구인걸까하고
궁금해 했으며 인터넷도 없던 그시절에 작은 정보들을 어렵게 주어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이영훈의 정체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우리가 처음으로 이름을 알게된 작곡가. 이영훈은 그랬다.
그리고,
그리고 그 역사적인 5집이 나왔다.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 우리는 눈물로 울었다.
그것은 경이였고 감동이었으며 채 완성되지 않은 미숙한 사춘기 애송이들에게
누군가 무턱대고 던져놓고 도망가버린, 도무지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용해야 할지 모르는
최고급의 광분이었다.
3, 4집을 제외하면 우리에게 그 이전과 그 이후의 가요란게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고
지금껏 대한민국에서 발표된 모든 앨범을 다 준다해도 이문세 5집과는 바꾸지 않을 심정이었다.
정말 그랬다.
우리는 열여덟살 때 처음으로 명반이란 걸 받아 쥐었다.
'시를 위한 詩'라는 철학적인 말이 노래 제목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며
바람이 불어 꽃이 떨어져도 그대 날위해 울지말아요
내가 눈감고 강물이 되면 그대의 꽃잎도 띄울께
나의 별들도 가을로 사라져 그대 날 위해 울지 말아요
내가 눈감고 바람이 되면 그대의 별들도 띄울께
가본적도 없는 광화문 네거리가 그리웠다.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가
가슴깊이 그리워지면
눈내린 광화문 네거리 이곳에
이렇게 다시 찾아와요
언젠가는 우리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눈덮힌 조그만 교회당
'내 오랜 그녀'를 들으며 생전 여학생 손목 한 번 못잡아본 우리는 괜히 가슴 두근거렸고
향긋한 그대 숨결이, 포근한 그대 가슴이
나를 불러주던 그 고운 입술, 이렇게 이밤 가득 넘치는 걸
창밖엔 어둠뿐이야 내오랜 빈상자처럼
깨끗히 지워버릴수 없는 건 내오랜 그녀뿐이야
'붉은 노을'은 이문세 노래중 유일하게 빠르고 강하다는 이유로 체육대회 응원가가 되었다.
붉게 물든 노을 바라보면 슬픈 그대 얼굴 생각이나
고개 숙이네 눈물 흘러 아무 말 할 수가 없지만
난 너를 사랑해 이 세상은 너 뿐이야 소리쳐 부르지만
저 대답 없는 노을만 붉게 타는데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었다.
아니, 녀석들은 모르더라도 나는 알 수 있었다.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은 그 이전에도, 이후로도 다시 나올 수 없는 명곡이라는 것.
가요라는 것, 그때 말로 '유행곡' 하나가 그렇게 웅장할 수 있고 그토록 정제될 수 있다는 것.
마돈나와 신디 로퍼의 탬버린 속에서 갑자기 맞딱뜨리게 된 첼로의 밤색 나무결.
그것을 나는 그때 보았다.
누가 반대를 하건, 누가 명확한 논리로 반박을 하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이 시대의 마지막
명곡이 될 것이라는 내 믿음엔 변함이 없었다.
왜냐면, 나는 열여덟이었으니까.....
라일락 꽃향기 맡으면
잊을수 없는 기억에 햇살 가득 눈부신 슬픔안고 버스 창가에 기대우네
가로수 그늘아래 서면
떠가는듯 그대모습 어느 찬비 흩날린 가을오면 아침 찬바람에 지우지
....
여위어 가는 가로수 그늘 밑 그향기도 아는데
....
저별이 지는 가로수 하늘밑 그 향기도 아는데
....
내가 사랑한
그대는 아나....
2008년이다.
세상은 변했고 이문세의 옛날 노래는 아무도 듣지 않는다.
회식 때 노래방 가서 부르면 1절이 끝나기도 전에 마이크를 뺏기고 분위기 깬다고 핀잔이나 듣는다.
사실 부를 용기도 없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노을진 창가에 앉아 멀리 떠가는 구름을 보며 노래를 불러 주었던 '소녀'는 이제 어디서 사는지조차 모르게 잊혀져 버렸지만, 내가 사랑했던 시대의 그대들-그대여 나의 어린애 그대는 '휘파람' 휘이 휘 불며 떠나가 버렸지만, 언제나 비내리는 거리에서 그 '빗속에서' 그대 모습 생각해보지만, 텅빈 하늘 밑 불빛들 켜져가면 남들도 모르게 서성이다 '옛사랑' 그 이름 - 아껴서 불러 보지만, 이젠 모두 세월따라 흔적도 없이 변해 갔지만 눈내린 '광화문' 네거리 이곳에서 연가라도 불러보지만, 그 거리에 세워진 '장군의 동상'만큼이나 사랑했던 작곡가 이영훈.
나는 감성적이고 고전주의자에다가 시대에 뒤떨어진 감상주의자지만 지금도 내 감성의 10할 중 8할을 채워 놓은 건 그때 그 열일곱 열여덟이었던 때 들었던 이영훈의 노래들이다.
그는 그렇게 내 십대의 끝부분을 꿰뚫고 가로수 그늘 아래를 걸어 이제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감사했습니다. 이영훈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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